내 남은 인생 어떻게 살 것인지 요즘 많이 생각합니다. 잘 살고 싶습니다. 목사 노릇 아직은 멀쩡하게 하는데 큰 무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4-50대에 비하면 차고 나가는 힘은 없지만 쓸데없는 것으로 시간낭비를 하거나 에너지 소모는 잘 안합니다. 내 약점과 장점이 뭔지 좀 압니다. 그러니 내가 아닌 것으로 인정받으려 애쓰지도 않고 나 스스로 자족함을 알아 인생 사는 것이 나름대로 재미있습니다.
지난 화요일 시작해서 다음 토요일까지 연합감리교회 4차년 총회가 노스 케롤라이나 샬롯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막힌 공간에 오래 앉아서 하는 회의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본의 아니게 ‘1번 예비 대의원’이 되어 발언권도 없으면서 하루 종일 앉아 있게 되었습니다. 대의원 누구라도 일이 생겨서 나오면 들어가야 합니다.
총회 862명 대의원 중 한인은 6명입니다. 3명이 여자 목사이고 3명 평신도 가운데 한 명 남자입니다. 남자 목사로서는 저와 미네소타 연회 감리사가 ‘1번’ 입니다. 그러니 한인 남자 목사는 단 한사람도 대의원이 없습니다. 거의 모두 젊습니다. 버지니아 연회 목사 총대는 어린 시절 보았던 선배 목사님 딸이고 보스턴 연회 총대는 시카고에서 저와 함께 사역했던 당시 전도사의 딸입니다. 제가 유아세례를 주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동안 내가 중심이 되는 곳에서 잘 놀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나같은 늙은이는 나설 곳도 아니고 때가 아닙니다. 여러 면에서 이번 총회 참석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애매한 책임도 불편한 공간과 시간도 나름대로 배움의 기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교단이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좋습니다. 자유함입니다. 예수님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눅 5:36)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유아세례를 준 젊은 청년이 발언을 당당하게 하고 나는 뒷전에 앉아 있는 현실이 감사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들이 주인 될 미래의 교회를 위해 나같은 늙은이들이 성령 받아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번 총회 안건에 대해 저에게 의견을 묻기에 나는 어떤 안건이 결정되어도 이제는 본론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살아보니 될 것은 되고 안될 것은 안되더군요. 무엇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면 사람이 막아도 하실 것이고, 반대의 경우이면 사람이 열어도 그분이 닫으실 것입니다. 미국, 유럽, 아프리카, 필리핀 등 지역의 현실에 따를 수 있도록 운영을 지역화 하자는 지역화(Regionalization) 안은 통과되었습니다. 지역화 안을 추진한 측은 미국 중심의 ‘신식민주의적’인 요소를 없애는 것이라고 했고 반대 측은 이제부터 아프리카 보수진영의 영향 받지 않고 미국 진보 진영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통과되었으니 실행될 것입니다. 기차 떠난 다음 손 흔들 것 없습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 유라시아 연회(헤가이감독)가 독립적 감리교회가 되는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그 전날 헤가이감독이 저를 좋은 식당에 초대해서 연합감리교회 감독으로서 어쩌면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식사가 될 것 같아 자기가 돈을 내겠다 했습니다. 그동안 언제나 제가 냈습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연회는 아무래도 미국 중심의 교단에 오래 붙어있기 어려웠습니다. 힘들어도 자기가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은 장기적으로 좋을 테니 잘 된 것입니다.
오는 주간에 현 장정과 사회원칙의 ‘언어’를 바꾸자는 안건이 결정될 것입니다. 결혼에 대한 정의입니다. 현재의 장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그냥 ‘두 사람’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미국은 연방법으로 이미 이 사안을 승인했습니다. 이번 총회에서 부결되면 다음 총회에서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것 예상하고 이미 8,000 교회가 나갔습니다. 한인교회도 50여 교회가 글로벌감리교회로 갔습니다. 아직도 나가야 하는 교회들이 있으면 잘 나가게 하면 좋겠지만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면 남아서 잘해야 합니다.
제가 보니 자기 존재를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기 이익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수자들은 투쟁으로 인권을, 기득권자들은 이익을 위해서입니다. 역사의 흐름에 무관심한 방관자들이나 세상 돌아가는 것 판단을 못하고 쉽게 선동 당하는 우매한 군중들은 권력을 가진 세력에 의해 끌려갈 뿐입니다.
보청기를 하니 좋은 것은 말을 급하게 하지 않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헛소리해서 망신당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줄어들다 보니 신기하게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이 잘 보입니다. 이번 총회 참석하면서 우리 한인교회가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민주주의는 참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연합감리교회 본 게임에는 참여를 못하면서 장외에서 우리끼리 잘한다고 만족했습니다. ‘코리언 특별주의’(Korean Exceptionalism) 착각도 심했습니다. ‘모델 마이너리티’라고 착각하면서 작은 이익을 얻어내는 것으로 만족하는 우둔함이 있었습니다. 권력 잡은 사람들은 말 잘 들으면 먹을 것 주고 안 들으면 국물도 없이 무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책임 있는 존재로 참여하지 않으면 비루한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을 생각합니다.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날이 길었지만 요셉은 사람들이 못되게 하는 짓에 인생을 맡기지 않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꿈으로 살았습니다. 연합감리교회라는 제국에 빌붙어 있는 식민지 백성으로 존재하는 한인교회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연합감리교회는 주인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내가 만들어 가야 하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자기 최선을 다 할 것이지 불평과 불만으로 채울 것 아닙니다.
바다에 나가보면 젊은이들은 파도가 강하고 높은 곳에서 파도를 타고 늙은이들은 의자에 앉아서 쉬더군요. 그런데 성령이 임하면 늙은이가 꿈을 꾸어 젊은이들이 비전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열어준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나는 이런 성경말씀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