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주제로 4/23-5/3일 두 주간 샬롯에서 모였던 연합감리교회 총회는 파란만장했던 동성애자 목사 안수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번 총회는 이름부터 애매했습니다. 2024년에 모이면서 ‘2020년 총회’라고 이름했습니다. 코로나라는 온 세상 문을 닫게 만든 세계적 유행병(pandemic) 때문에 모이지 못한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46:10 말씀은 “너희는 가만히 있어(잠잠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입니다. 주제와 달리 사람들이 가만히 있거나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수십 년 우리 교단은 시끄러웠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됨을 알게 하십니다.
총회는 앞으로 4년간 총예산 3억 7,340만 달러를 통과시켰습니다. 미국, 유럽, 아프리카와 필리핀 각 지역의 현실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지역화가 통과되었습니다. 결혼에 대한 정의는 ‘한 성인 남자와 여자 또는 두 성인’으로 개정되었고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목사 후보 안수 금지 조항과 동성 결혼식을 집례한 목회자에 대한 처벌 조항들이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목사가 되는 길을 열었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는 문구로 대체하지는 않았습니다. ‘전통적 신앙’을 고수하고자 하는 교회나 목사들에게 부당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1. 감독은 파송 시 해당 교회 신앙 전통에 맞는 목회자를 파송한다. 2. 동성 결혼 주례 및 장소 제공 여부 권한은 교회와 담임 목사에게 있다. 3. 이와 관련하여 어떤 교회나 목사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동성애와 관련된 안건이 93%로 통과되었습니다. 그동안 교단의 보수 입장을 고수해 왔던 우리 한인들보다 더 전통적 신앙을 가진 아프리카 대표들이 지지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논쟁을 중단하자는 결단입니다. 총회 참석한 한인 지도자들은 모여서 교단의 이런 변화에 대해 우리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자고 마음과 뜻을 모았습니다. 그 결단을 실천하고자 한인총회 회장단은 현재 교단 세계선교국(GBGM)에 속한 140명 선교사 모두에게 최소한 한 달에 $100달러 이상 지원 하기로 발표했습니다. 물론 상징적 제스처이지만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총회를 마치면서 전도서 말씀의 때(time)를 생각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전3:1) 그때가 어느 때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지금은 무너진 것을 세우고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이루고 사랑할 때입니다. 저는 그렇게 선택하고 결단합니다.
며칠 전 ‘신념은 지성이 아니다’(차정식 교수)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한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신앙고백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교수를 징계하려고 한 사건에 관해 쓴 것입니다. 차교수는 참된 신앙에는 이데올로기화 되는 신념이 아니라 합리적 사고와 논리로 분석하고 의미를 따지고 해석하는 사유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총회를 마치고 비커튼 감독께 “이런 결정을 하면 고생하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일선 목사들인데 우리들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알기를 바랍니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어찌 모르겠어요. 그대와 후러싱제일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합니다. 뉴욕연회 총대들도 후러싱제일교회가 어려움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진심으로 우려하고 기도해주었습니다.
앞으로 여러 말들이 많을 것입니다. 어제 인터넷 신문에 보니 연합감리교회나 연합장로교회와 같은 교단은 성경의 진리와 성령을 떠났으니 교회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글들이 있더군요. 성경은 물론 성령은 어느 누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나 되는 양 그런 말 하는 것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사람은 삶의 자리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과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우물과 개천의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카고에서는 미시간 호수 애틀란타에서는 차타후치 강을 즐겼습니다. 지금은 뉴욕에서 대서양 바다에 자주 나가서 걷습니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에 따라 때로 삶의 지혜와 방식이 다릅니다. 연합감리교회는 바다와 같습니다. 그러나 각 교회는 우물, 강, 호수, 바다 각양각색의 삶의 현장에서 존재합니다. 후러싱제일교회는 미국 뉴욕이라는 바다와 같은 도시에 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기회와 동시에 위험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우물이나 연못의 기준이 적용되기 어렵습니다. 어느 곳이라도 물은 고이면 썩어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흘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샘물이 생수의 강 되어 흐르는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에 나가 먹고 살아야 하는 아이리쉬 어부들의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바다는 너무 크고 우리가 탄 배는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앞으로 어떤 파도가 닥쳐올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는 파도타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하나님 됨을 알기 위해서 잠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