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까요? 미국 달러가 강세이다 보니 킹(king)달러에서 갓(god)달러로 불리운다고 합니다. 미국 우방인 캐나다도 영국도 경제침체로 난리입니다. 한국 환율도 달러당 1,500원을 넘어 1,700원까지 갈 것이라는 말이 돕니다. 금리가 솟아 오릅니다. 미국이 미국우선 정책을 택하면서 우방국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미국은 우방을 잃고 고립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가 아니라 ‘가내공업’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미국이 그런 일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뉴욕 바닥경제가 엉망입니다.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가족끼리 가내공업 할 수 있는 장사만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공화당이라고 해도 조지 부시는 이것을 알았고 트럼프는 몰랐습니다. 트럼프가 말하는 ‘위대한 미국’이란 미국 이기주의입니다. 멕시코 국경 담을 높이 쌓으면 미국이 잘 살게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 미국 건축업과 농업은 물론 한인 식당이나 세탁소 직원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민주당 바이든 대통령까지 트럼프와 다름없이 중국과 갈등관계를 만들고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치니 앞으로 미국 회사들은 외국에 물건 팔기 어려워집니다. 나만 잘 살겠다고 하다가 모두 못 사는 세상 만드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제가 오랫만에 시국과 조금 연관된 설교를 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는 것 같은 내용이 있었다고 혼동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을 두둔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을 무시하는 일본총리를 비판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이야기로 인해 힘들었다는 교인도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관심이 아니라 내 조국 대한민국이 잘되는 것이 관심입니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이 아닌 분단과 분열은 한민족 장기적으로 망할 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무섭고 빠르게 바뀝니다. 미국도 자국 이익우선주의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구태의연 진영논리와 색깔과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면 우물안 개구리 꼴 됩니다.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에는 민주당이나 공화당 구별이 없습니다. 진보와 보수도 인간들 소꿉장난입니다. 조금 의롭다 잘났다고 그 재미에 빠져서 교회가 죽고 나라가 망하는데 보지 못하면 안됩니다.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 거대한 배가 침몰되는데 그 안에서 귀족 평민 따지고, 보석 자랑하고, 부귀영화 꿈꾸고 춤추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자기가 남보다 조금 잘났다고 폼 잡는 것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교단도 세계적 글로벌 교단을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이제는 지역패권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만연합니다. 총회가 동성애자 목사안수 불허를 결정하게 되니 교단의 법 불복종이 교단 정치하는 사람들의 정의를 위한 해방투쟁 과제가 되었습니다. 법을 지켜야 하는 경찰과 검찰이 법을 무시하고 파괴에 앞장을 서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런 어이없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하면 무식한 파괴주의자로 몰리는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회복을 위해 몸부림 치기도 어려운데 교단총회가 모이지 못한다고 동성애자 목사안수 문제에 대한 결정을 교회로 돌리게 되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교인들끼리 의견 충돌하고 갈라지는 진통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이가 없고 기가막힙니다.

‘각자도생’이란 말이 조선실록에 4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일본과 중국의 침략 당시 나라가 백성들을 지켜주지 못할 때 백성들이 각자 알아서 살아나야 하던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세상에서 스스로 지켜내야 한 것입니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쉽습니다. 가정을 지키고 교회를 지키는 것 남들이 알아서 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믿음의 중심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어려울 때 일수록 우리는 언행심사에 있어서 신사적이고 고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 4:8)

어제 새벽기도회 본문 말씀 신명기 1:6-7에 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산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었으니 이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그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차지하라고 하십니다. 오래 머물러 있다보니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하신 이루어야 할 목표를 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약속 믿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때로 우리가 익숙하고 편안하고 이익을 보장하는 것 같은 그것이 사탄의 꾀임이고 망할 길일 수 있습니다.

노예백성이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것은 주체적인 존재로 책임있게 살아야 하는 도전과 사명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 말씀이 있고 앞에는 하나님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기막힌 현실을 이기고 기적을 일으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어진 사명 감당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