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과거를 들추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질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미 스스로를 끝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인생의 자리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리까지 찾아오셔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십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예수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다른 것을 더 사랑하기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신념을 가지는 것도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예수님보다 앞설 때입니다.
역사는 이미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었습니다. 나치 독일 시대, 많은 교회는 하나님 나라보다 독일이라는 국가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불의한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시대를 비판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무엇을 더 사랑하고 있나요?
“미국을 다시 위대한 나라로”(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는 구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과 결합되어 국가가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는 순간, 신앙은 왜곡됩니다. 정치 지도자가 절대화되는 순간,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부인하는 모습은 베드로처럼 입으로 “나는 모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조용하고 교묘하게 나타납니다. 불의 앞에서 침묵할 때, 약자의 고통을 외면할 때, 이민자와 소수자의 눈물을 외면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언어는 여전히 사용하지만, 삶의 방향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을 때, 그것이 위험한 상태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하게 서야 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부족하지만 사랑합니다.”
지금은 다시 예수 사랑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