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교 본문 가운데 아직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증으로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보내신 내용을 묵상하다가 동서남북 분별 못하고 하늘의 방향과 땅의 축을 모르는 천방지축이었던 지난날이 떠올랐습니다.
1979년도 신학대학원 1학년 때 감리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다가 보스톤한인교회(연합장로교)에서 사무직원을 찾는다고 해서 지원했고 나중에 교육 목사, 부목사 할 때에도 사무직원과 관리인을 겸하는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수동식타자기로 왁스 종이에 타자 쳐서 등사기에 잉크를 넣고 돌려 주보를 찍어내던 때였습니다. 가끔 주일 새벽에 담임목사님이 전화를 걸어 설교 제목과 본문이 달라졌다고 하면 바로 교회로 달려가 주보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마음이 급하면 왁스 종이가 등사하는 도중 조금씩 찢어지기 시작하고 테이프를 붙여도 잉크가 밀려가면 속상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그래도 홍근수 목사님 밑에서 배우는 기쁨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홍목사님이 안식년 가시고 24살에 임시 담임을 하니 교인들이 저를 목사라기 보다는 목동으로 여겼습니다. 홍목사님 설교를 듣던 교인들이 내용은 말할 것 없고 한국 말도 서투른 내 설교를 들어야 하니 1년이 빨리지나 담임목사님이 설교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성경 공부를 하면서 “사실 마태복음 마태가 쓴 것 아니고 누가복음 누가가 쓴 것 아니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강의를 했더니 권사님 한 분이 “목사님, 나는 평생 마태를 마태가 쓰고 누가를 누가가 썼다고 믿었는데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하셨습니다. 그 권사님은 대구 제일교회 출신으로 철저한 보수 신앙을 가지고 계셨고, 그 교회 장로님이 손자인 어른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권사님이 그러시다니 제가 틀린 것 같아요” 꼬리를 내렸더니 앞에 계시던 장로님들이 깔깔 웃으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1997년에 아틀란타한인교회 목회 시작 한달 만에 장로님들이 보자고 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계XX처럼 주일에 교회만 왔다 갔다 하지 말고…”라 한 것 때문이었습니다. 표준말에 시계추라는 좋은 말이 있는데 왜 그런 단어를 사용했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내가 알기로는 시계XX이 표준말입니다”라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전임 목사님이 대전의 목원대 총장을 지내신 분이라 충청도 분들이 많은 교회였는데 평안도 기질을 가진 젊은 목사가 와서 서로 많이 힘들 수도 있었는데 39살에 시작해서 57살까지 18년 큰 어려움 없이 목회를 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젊은 목사가 담임으로 오니 장로님들이 모두 혀를 깨물고 최소한 3년은 참자고 했다 합니다. 3년 후에도 별말이 없기에 어느 날 모임에서 “제가 목회를 잘하는지 장로님들이 별말씀이 없으시네요”했더니 한 분이 “목사님, 우리는 아직도 혀를 깨물고 있습니다”해서 모두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첫 담임 목회를 시카고에서 1984년도에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생 청년들 중심으로 모였는데 민병렬 목사님이 개척하신 신일교회와 합치면서 교회 생활 베테랑인 분들이 들어왔고 회의 때마다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가장 문제를 많이 지적하는 분이 저에게 “목사님, 저 때문에 힘드시죠? 그런데 목사님 저는 핵발전소 설계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숫자가 정확해야 합니다. 제가 보통 사람보다 정확한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인정하지만 목사님은 거꾸로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분이라는 것 인정하셔야 합니다” 하셨습니다. 제가 연초에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365 말씀 묵상’을 가지고 시카고 처음 목회했던 교인들을 찾아 뵙고 어린 목사를 목사 만드느라 수고 많으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아버지날인데 내 목회 스승이셨던 교인들이 생각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