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편에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 다윗이 살던 시대에 세상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믿음 지키며 살려고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 타락한 세상을 살아가는 생존의 지혜를 말한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비겁함은 묻는다. 안전한가? 기회주의는 묻는다. 정치적으로 유리한가? 허영은 묻는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그러나 양심은 단 하나를 묻는다. 옳은가? 그러나 어떤 때는 안전하지도 않고, 정치적으로 유리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 있지만 단지 그것이 옳기 때문에 반드시 그 입장을 취해야 할 때가 있다.”

지난 2022년 2월 말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시작된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사상자가 200만 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자 지역에 폭격을 해서 5만 명이 넘게 죽었습니다. 그 가운데 50%가 여성과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폭격으로 이란 민간인 1,300명이 현재까지 사망했습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는데 대통령이 이렇게 발언합니다. “목표를 성공적으로 타격했다.” “우리가 승리했다.” 그러나 뉴스 화면 뒤에는 보이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폭격이 지나간 자리에서 죽은 아이를 안고 통곡하는 부모의 사진입니다. 죽은 부모 앞에 넋을 잃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입니다.

시편 11편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성경에서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전쟁으로 많이 죽어가는 이 시대에 과연 정직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며칠 전 신문을 보니 미국 서부 어느 교회에서 반대편 교인을 이민국에 신고해서 잡아가게 했다고 합니다. 자기 반대편 교인 밉다고 그런 짓 한 사람들 정직한 사람들인가요?

탈무드에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피쿠아흐 네페쉬’인데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모든 율법보다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율법 규정도 넘어설 수 있고 심지어 어떤 규칙도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단 하나의 이유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나치 시대에 유대인을 숨긴 사람들은 거짓말 한 사람들이 아니라 유대 전통에서 의로운 사람들(The Righteous)로 불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직한 사람되기를 바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