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를 오래 했지만 여전히 가장 힘든 설교가 어머니주일 설교입니다. 며칠 전 한 젊은 목사가 “목사님, 이번 어머니주일에는 너무 많이 울지 마세요” 합니다. 그래서 “울기는 왜 우냐? 불효자나 우는 거지” 그랬더니 “목사님이 불효자라서 많이 우시는 거 우리가 다 압니다”합니다.
젊은 시절 목회할 때 어머니는 제가 설교 준비를 하고 있으면 일부러 제 앞을 지나가며 “그대 어머니에게 먼저 잘해라” 하셨습니다. 그때는 농담처럼 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씀이 제 가슴을 깊이 후벼 팝니다. 부모님이 다 떠나시고 나니 이제는 “죄송합니다”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부모 공경은 단순한 미풍양속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축복의 약속을 담아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할까요? 아마도 부모의 사랑이 공기처럼 되어 버렸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기는 없으면 죽는데 늘 곁에 있으니까 당연한 줄만 아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곁에서 실제로 잘 모신 것은 장남인 내가 아니라 동생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목회하는 저에게 절대로 부담을 주는 일이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번 제가 모시려고 했지만 완강하게 거부하셨습니다. 애틀랜타에는 손주들이 있으니 가끔 오셨지만 제가 뉴욕에 왔을 때는 이미 치매 기운이 있으셔서 한 번도 못 오셨습니다.
유대 철학자 아브라함 헤셀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노인들에게는 기억만이 아니라 꿈이 필요하다.” 부모님의 노년이 외롭고 초라한 시간이 아니라 존중 받고 사랑받는 시간이 되도록 도와드려야 합니다. 교회 오는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 되게 하고, 자녀들이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해야 합니다.
너무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