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회의 절차’(Parliamentary Procedure)를 배우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Robert’s Rules Of Order’(로버트 회의 진행법) 책도 사서 읽고 있습니다. 중학교 때 이런 비슷한 것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많은 회의를 했지만, 이런 것 때문에 문제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회를 가거나 어떤 회의에 가도 거의 발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큰 문제 없이 교단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는 4월 말에 연합감리교회의 미래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총회’(General Conference)가 Charlotte, NC에서 열립니다. 총회를 앞두고 총대들에게 회의 절차를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아무나 막 소리 지르는 난장판이 아니라 민주적인 회의가 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교단 회의에 열심히 참여합니다. 지난 수년간 교단분리 문제로 인해 어려움 당하면서 깨달은 것은 나 자신부터 교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관심하기도 했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반성이 큽니다. 평화 시대에는 ‘총회’에서 어떤 결정이 있어도 우리 한인교회들과 거의 무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교단의 결정이 우리 교회에 직격탄이 되어 날아왔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총회에 뉴욕연회 목사 총대의 일원으로 참여합니다. 사실 ‘총대’ 자리를 기권하려고 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들어가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교회를 잘 지켜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지역총회를 앞두고 교단을 탈퇴하려는 교회 담임목사가 총대가 되는 것은 불법이라는 메시지가 돌았습니다.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교단분리 결정은 교회 임원회가 한 것이지 담임목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교회와 감독 사이에서 과정을 서로 존중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올해 총회를 앞두고도 그런 메시지들이 돌고 있습니다. 제가 총대 자격을 내놓게 되면 그런 소문이 정당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총회가 연합감리교회의 미래가 결정되는 역사적인 회의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연합감리교회의 모든 결정은 ‘회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개체교회 구역회로 시작하여 연회, 지역총회 그리고 4차년 총회입니다. 총회에는 전 세계에서 2,000명에 이르는 총대들이 참석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회의를 ‘거룩한 대화’(Holy Conferencing)로 존중합니다. 이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신학적으로 라인홀드 니버의 ‘기독교 현실주의’에 가깝습니다. 민중신학이나 해방신학과 같은 것들이 이상주의에 가깝다면 니버의 신학은 기독교인들이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에 대해 정직해야 한다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둡니다. 그는 현실을 무시하는 낙관주의(Utopia)나 비관주의를 비판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책임적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실적 대안을 내놓으면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正義)를 지향하는 인간의 가능성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고, 불의(不義)로 향하는 인간의 경향성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이 세상에서 어떤 정치제도나 집단도 완전한 선과 악은 없습니다. 교회도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 형상’과 ‘원죄’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러니 나는 절대적 진리 편이고 반대편은 절대적 악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지이고 교만입니다. 현실 세상에서 인간은 상대적 가치를 지닐 뿐이라는 것 겸손히 인정해야 합니다.

교단분리 문제로 인해 현재 7,700개의 교회가 연합감리교회를 떠났습니다. ‘거룩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아직도 우리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며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교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념 전쟁에 빠진 오늘 이 시대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우리 교단은 어떻게 될 것인지 정신차리고 봐야 하고 책임 있게 참여해야 하고 ‘거룩한 대화’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라인홀드 니버의 기도입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serenity)을 주소서! 그러나, 바꿀 수 있는 것은 담대히 바꾸려는 용기(courage)를 그리고 이 둘을 잘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wisdom)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