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3일자 보스톤대학 WBUR에 “Why our family still makes time for church on Sundays”(왜 우리 가족은 주일이면 아직도 교회 갈 시간을 만드는가)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지난 25년 동안 미국에서 4천만 명이 교회 가는 것을 중단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에서 받는 상처, 정치적 의견 차이로 인한 집단 따돌림, 목회자들에게 당하는 영적 혹은 성적 착취, 그리고 인종차별을 포함한 각양각색의 차별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25%뿐이라고 합니다. 다른 75%, 3천만 명은 그냥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주일에 교회 안 가는 것이 편해져 버린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생일파티, 아이들 축구 경기 데려다 주는 일은 물론 그냥 사는 일로 바쁘다가 서서히 교회에서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쓴 가족은 주일이면 예배 드리러 가는 시간을 의도적 그리고 의지적으로 낸다고 합니다. 이유가 이렇습니다.

한 시간 거리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15살 난 아들에게 왜 주일이면 교회에 오는지 물었더니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라고 답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기숙사 생활로 한동안 교회에 오지 못하다가 어느 주일 중고등부 예배에 참석했는데 다운증후군(Down Syndrome)이 있는 누나가 감사 기도 제목을 나누는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내 동생이 오늘 예배 함께 드려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행복 가득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그랬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연세 많은 어른들이 자기를 보면 환하게 웃어주고 공부 잘하는지 물어봐 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누나는 다운증후군이 있으니 학교에서는 물론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데 교회에 가면 환영하고 귀하게 여겨주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예배 시간 누나에게 성경 봉독을 시키고 하나님이 사랑한다는 메세지를 주는 것이 감사하다고 합니다. 주일에 성경 봉독하는 것을 인생 가장 거룩한 목적으로 알고 살아가는 누나가 사랑하는 교회이기에 주일이면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기쁘다고 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은 자기에게 대단히 잘 기획된 예배나 찬양, 수준 높은 프로그램 그런 것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못나고 부족한 그리고 망가지고 무너진 개인과 가정이지만 주일이면 서로 반가워하고 귀하게 여기고 사랑을 주고받는 것 때문에 온 가족이 주일이면 교회에 온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그런 사랑과 은혜의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설교를 해주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얼마를 벌고 얼마나 잘나야 하고 이런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이런저런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고 정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데 교회는 아직도 사람을 있는 그대로 환영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곳이기에 온 가족이 주일에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을 우선 순위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꼭 40여 년 전(1984년) 한국 기독교 100년을 맞아 시카고 북일리노이연회에서 저에게 한 달에 한 번 미국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하라고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주로 시골 작은 교회를 다니며 설교를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교회가 있습니다. ‘기쁨과 기도제목 나누는 시간’에 주로 아픈 사람들 소식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다운증후군이 있는 청년이 일어나 뭐라고 하는데 교인들이 열심히 듣고 웃어주고 박수를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가대는 3-4명 노인들인데 ‘There is a balm in Gilead’을 불렀습니다. 노래를 잘 부른 것은 몰라도 신앙고백이 담긴 정성스런 찬양에 은혜 받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설교 사례비는 한 시간 거리를 가건 두 시간 걸리는 교회를 가건 미국 교회 어디나 $25이었습니다. 가스비도 되지 않는 설교 사례를 받았지만 지금도 1년 동안 미국 시골 교회를 다니면서 경험했던 은혜를 감사합니다.

신학교가 사양산업이라고 말합니다. 목사 되려고 하는 젊은이들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교회가 앞으로 더 어려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엊그제 읽은 주일이면 온 가족이 예배드리기를 우선순위로 삼는 가정의 간증에서 교회가 살길을 봅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는 어떤가요? 뭘 대단히 잘해서 부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늘 긴장하는 것은 아닌지요? 나와 생각이 다르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 쉽게 하지는 않는지요? 남의 어려움과 잘못을 품어내는데 인색하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이 귀하게 여겼던 ‘지극히 작은 자’를 환영하고 있는지요? 이런 교회가 되려면 바리새적인 율법주의를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 노릇 그만하고 작은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고 축제가 있는 아버지 마음을 가진 교회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