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하지 않음으로 함 (Non-Doing)

1980년대 중반 목회 초기 내 스승 곽노순 목사님께서는 ‘하지 않음으로 함’(Non-Doing)을 많이 가르치셨습니다. 보스톤한인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을 때 시카고 지역 감리사가 더 이상 타 교단에 있지 말라고 하면서 ‘대학목회’에 파송을 결정했다고 돌아오라 했습니다. ‘대학목회’를 나는 캠퍼스 대학생선교라고 여겼는데, 내 전임자이신 곽목사님께서는 ‘큰 가르침’으로 ‘대학’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여섯개 대학 캠퍼스를 다니며 사역을 하던 저를 어느날 부르시더니 “이놈아, [...]

2023-03-05T08:28:07-05:00March 5th, 2023|

뉴욕을 찾아오는 애즈베리 부흥!

지난 2월 8일에 시작되었던 ‘애즈베리 대학교 부흥회’(Asbury Revival)가 오늘로 마감된다고 합니다. 평범한 채플 시간이 끝나고 열 댓명이 남아 기도하던 가운데 시작된 부흥의 역사가 하루 종일 매일 예배가 드려지고 수만명이 찾아와서 캠퍼스를 채우며 예배 드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에즈베리 대학교에서는 오늘로 집회를 마치게 되지만 집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미국 전역으로 흩어져 간증하는 일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두명의 [...]

2023-02-26T08:30:35-05:00February 26th, 2023|

제 아내가 고 황광은 목사님의 딸입니다

저와 아내는 오늘 서울 영암장로교회에서 열리는 ‘고 황광은 목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있습니다. 한국 보이스카웃 연맹과 서울 YMCA 등이 후원을 하고 영암교회가 주관을 합니다. 52년 전에 떠나셨는데, 영암교회는 이번에도 고인을 기리는 책을 두 권 출판하였고 예배와 추모행사를 지극정성으로 기획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30주기 때 김창걸 장로님(전 숭실재단 이사장)께서 “사람들은 30년 전 떠난 목사를 [...]

2023-02-19T10:10:35-05:00February 19th, 2023|

그래도 사랑과 하나됨을 위하여

어제 키르기스스탄 감리사인 지마 목사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중앙아시아에 가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을 때 보고 4년 만에 만났습니다. 4년 전 화재로 전소되었던 파블로다르(Pavlodar) 교회가 예배당을 잘 짓고 교회가 부흥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그동안 못했는데, 이제는 꼭 와서 유라시아 지역 헤가이 감독과 함께 헌당예배를 드려달라고 부탁합니다. 30여 년 전 후러싱제일교회가 카자흐스탄 수도 알마티에 선교센타를 [...]

2023-02-12T08:16:57-05:00February 12th, 2023|

살자 그리고 살리자

어제 제 SNS에는 한국에서 갑자기 세상 떠난 한 여성목사에 대한 애도의 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하는 일에 동참하지도 않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목사님의 죽음은 성경과 하나님을 들먹이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지하고 무자비한 짓들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노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저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분노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아픈 [...]

2023-02-05T09:50:20-05:00February 5th, 2023|

이 시대 거대담론 예수 십자가

몇년 전 미래가 보장된 자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결단하고 찾아온 젊은 목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무모한 일이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단이 단호하기에 “오늘 이렇게 결정한 것 때문에 훗날 나를 찾아와서 눈물 흘리는 일 없기를 바란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맨하탄에서 교회를 본격적으로 개척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이미 개척 훈련 잘 받고 지원 기반이 마련되어 당당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

2023-01-29T08:22:47-05:00January 29th, 2023|

창조하고 존재하는 용기

요즘 제가 80년대 청년목회를 하면서 설교에 자주 인용했던 롤로메이(Rollo May)가 말한 “옛 것은 다 지나가지 않았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때에 필요한 것은 창조하는 용기다(Courage To Create)”와 폴틸리히(Paul Tillich)의 “어떤 유혹과 협박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용기(Courage To Be)가 믿음이다”를 많이 생각합니다. 목회 말년에 존재와 창조의 용기가 이렇게 절실하게 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김소월 [...]

2023-01-22T08:09:15-05:00January 22nd, 2023|

만난 적 없는 오랜 친구

어제 의학적으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암에 걸린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친구라고 하지만 제 기억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 페북 글에 가끔 따듯한 댓글을 달아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분입니다. 어쩌면 내가 존경하는 유성준 목사님의 사모님이 “김목사님, 내 막내 동생이니 목사님이 좀 가깝게 친하게 해주세요” 부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참 신기합니다. [...]

2023-01-15T07:55:10-05:00January 15th, 2023|

시시한 현실 신명나게 살자

어느 분이 세상 사는 비결을 말하면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물을 무서워하면 안되고 물에 들어가야 무엇을 건져 내어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녀는 숨을 참을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참기만 하면 숨을 못 쉬어 질식할 위험이 있는 것이고요. 그러니 참을 줄도 알아야 하고, 숨을 쉴 줄도 알아야 하는 [...]

2023-01-08T08:21:53-05:00January 8th, 2023|

불확실성 시대 확실한 믿음으로

2023년 첫날입니다. 새해는 어떤 의미에서 지난 3년여 넘게 온 세계를 고난과 고통, 아픔과 죽음의 두려움에 몰아넣고 무너지고 닫히게 했던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모든 것이 회복되고 새로 시작되는 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홍수 이후 무지개가 뜨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눈 폭풍이 지나고 창문 밖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는 부활의 새벽 무덤의 돌이 옮겨져 [...]

2023-01-01T08:38:47-05:00January 1st,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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