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ebruary 2023
그래도 사랑과 하나됨을 위하여
어제 키르기스스탄 감리사인 지마 목사가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중앙아시아에 가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을 때 보고 4년 만에 만났습니다. 4년 전 화재로 전소되었던 파블로다르(Pavlodar) 교회가 예배당을 잘 짓고 교회가 부흥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그동안 […]
살자 그리고 살리자
어제 제 SNS에는 한국에서 갑자기 세상 떠난 한 여성목사에 대한 애도의 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분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하는 일에 동참하지도 않지만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목사님의 죽음은 성경과 하나님을 들먹이며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
January 2023
이 시대 거대담론 예수 십자가
몇년 전 미래가 보장된 자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결단하고 찾아온 젊은 목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무모한 일이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단이 단호하기에 “오늘 이렇게 결정한 것 때문에 훗날 나를 찾아와서 눈물 흘리는 일 없기를 바란다”고 […]
창조하고 존재하는 용기
요즘 제가 80년대 청년목회를 하면서 설교에 자주 인용했던 롤로메이(Rollo May)가 말한 “옛 것은 다 지나가지 않았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때에 필요한 것은 창조하는 용기다(Courage To Create)”와 폴틸리히(Paul Tillich)의 “어떤 유혹과 협박이 있어도 그럼에도 […]
만난 적 없는 오랜 친구
어제 의학적으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암에 걸린 친구와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친구라고 하지만 제 기억에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깝게 생각하는 이유는 제 페북 글에 가끔 따듯한 댓글을 달아주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분입니다. 어쩌면 내가 […]
시시한 현실 신명나게 살자
어느 분이 세상 사는 비결을 말하면서 ‘해녀가 바다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물을 무서워하면 안되고 물에 들어가야 무엇을 건져 내어 먹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녀는 숨을 참을 줄 아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