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초에 어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고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집례해야 할 장례예배가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서 위기는 넘겼다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장례를 마치고 가려는데 동생이 자기가 어머니 잘 돌보고 있으니 올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동생의 뜻은 걱정 말라는 것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 동안도 어머니를 신경 쓰지 않았는데 뭐 새삼스럽게 그러느냐는 질책처럼 들렸습니다. 제가 장남이지만 사실 저는 어머니를 돌봐 드린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학교를 간 이후 저는 어머니와 근 10년 떨어져 살다가, 제가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기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사실은 제가 모신 것이 아니라 어머니 집에 들어가 산 것이라고 해야 솔직할 것입니다.

그러다 제가 20년 전에 시카고에서 애틀란타로 목회를 위해 떠나며 어머니는 동생들이 있는 덴버로 가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거의 일년에 한번 찾아 뵙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2년 전쯤 갑자기 동생이 은퇴를 한다고 해서 생각보다 은퇴를 일찍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께 치매가 와서 돌보려고 그런 것이었습니다. 제가 장남이지만 목회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될까 봐서 동생이 저에게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매주 전화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언제부터인지 전화를 하지 않으셔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기가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 이후로는 전화를 드리면 제가 뉴욕에서 목회한다는 것을 매번 말씀 드려야 했고 항상 “네가 그 교회 부목사냐?” 물으시기를 반복하셨습니다.

3일 밤 동안 병원에서 어머니를 지킨 동생에게 저는 집에 들어가 자고 나오라 말을 건넨 후 제가 어머니 곁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장남인 저를 인식하신 어머니는 뭐라 말씀하려고 하셨습니다. 나중에 동생이 어머니 말씀을 해석하는데 “바쁜데 뭐 하러 왔냐? 나 괜찮다. 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반나절 밤을 샌 것이 전부인데 동생 역시 저에게 들어가서 자고 공항에 가기 전에나 잠시 들렀다 가라고 했습니다. 고작 반나절 밤샘을 한 것도 너무 힘들어서 집에 왔습니다.

지난 20년 어머니를 모신 동생이 제게 “엄마 살아계시는 동안은 내가 하지만 엄마 떠나면 그거는 알아서 해.” 합니다. 장례에 관한 것은 장남인 제가 알아서 하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 제 평생 성인이 된 후 어머니와 단 둘이 마주보고 있었던 시간은 지난 목요일 밤이 처음이었습니다. 그것도 어머니는 뭐라 말씀하려고 애를 쓰시는데 말이 나오지를 않아 답답해만 하셨고 저는 “엄마, 말하지 말고 자요.”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나중에 동생에게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시냐 했더니 자기가 보기에는 억지로 살려두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그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평생 하지 못했던 대화를 어머니와 나누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어머니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는 저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집에 들어가 자야 주일에 목사 노릇 할 것 같아서 염치가 없지만 동생과 어머니만 병원에 두고 아무도 없는 동생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집 안을 돌아다 보니 거실에 사진들이 놓여있는데 모두 손주들 사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자식들과 손주들 생각만 하셨는데 제 삶의 공간에는 어머니 사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식도리 못 한다는 자책은 가끔 했고 언제부터인지 어머니에게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그 때는 이미 치매가 와서 대화가 어려워졌습니다. 어떻게라도 뉴욕 한번 다녀가시도록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아무 곳도 다니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여러분께서 기도해 주셔서 위기는 넘겼습니다. 어려웠지만 너무 좋았습니다. 아직은 저를 알아보셨습니다. 어머니 손도 잡아볼 수 있었고 얼굴 마주볼 수 있었으며, 그 동안 동생과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는데 어머니 문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18년 1월 첫 주일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제가 “지금 하십시오.”라는 글을 인용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는 아마도 바로 제 자신에게 한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해야 할 일들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슴 아픈 후회가 없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