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미래가 보장된 자리를 내려놓고 새로운 시작을 결단하고 찾아온 젊은 목사 부부가 있었습니다. 무모한 일이기에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단이 단호하기에 “오늘 이렇게 결정한 것 때문에 훗날 나를 찾아와서 눈물 흘리는 일 없기를 바란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맨하탄에서 교회를 본격적으로 개척하겠다며 찾아왔습니다. 이미 개척 훈련 잘 받고 지원 기반이 마련되어 당당하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비결을 물으니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 보았습니다” 합니다. 작은 교단에서 자라 목사 안수를 받았기에 너무 크고 복잡한 교단에 들어와 있는 것이 남의 옷 입고 있는 것 같아 힘들었는데 다시 바닥에서 시작하니 마음이 편했다고도 합니다. 얼마나 그 모습이 기특하고 보기 좋은지 감사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능력’이라고 증언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거리끼는 것이고 헬라인들은 어리석다고 하지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증거합니다. 바울이 그런 말을 할 당시 예수 믿는 공동체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신앙운동에 불과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 군대를 물리칠 군사력을 가진 메시아를 기대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힘없이 죽어간 예수는 거리끼는(비위상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주만물이 돌아가는 철학을 자랑하던 헬라인들에게는 신적 존재가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며 죽어간다는 것은 어리석은 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부르심 받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라고 증거하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벌써 오래 전 세상 떠나신 드류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셨던 고 이정용 교수님에 대한 책이 나오는데 저자가 추천서를 저에게 부탁해 왔습니다. 그런데 다른 추천서 쓰신 분들을 보니 종교철학계 널리 알려진 분들이었기에 동네교회에서 목회하는 내 이름을 같이 올리는 것이 민망했습니다. 그 책 저자가 오래 전에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는 이 시대 거대담론(The Great Narrative)은 무엇인가요?” 저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이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니 목사님 같은 분이 이 시대 거대담론을 초등학생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니 당황스럽네요” 하기에 제가 “목사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이 말씀 아니고 다른 대단한 거대담론이 어디 있겠어요” 했었습니다.

제가 모셨던 스승들이 공부를 많이 하시고 대단한 분들이셨기 때문에 제 목회 초기 무척 열심히 흉내 내려고 애를 썼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민 바닥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함께하는 목회가 내 목회라는 깨달음이 오면서 내가 아닌 내가 되려는 말과 몸짓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이제 목회 말년에 이르게 되니 단순해지게 되고 예수 믿는 본질에 집중하게 됩니다.

어제 목회스텝회의에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후러싱제일교회에서 어떻게 예수 십자가 보혈의 능력이 드러나고 있는가?” 비본질적인 문제로 에너지 소모하지 말고 복음의 본질에 집중하자고 했습니다. 중생의 죄 씻음받고 구원받는 기쁨과 세상의 빛과 소금 사명 감당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교단분리문제로 어지럽고 어려운 현실에서 제게 “목사님의 생각과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제 답은 성경과 교단의 법인 장정(Book of Discipline) 입니다. 성경이 중심이고 성경말씀을 우리가 사는 시대에 적용하기 위한 해석을 공유하는 교단의 법이 장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도 덜도 다른 것 아닌 성경과 장정이 제시하는 것을 가지고 교회를 건강하게 지키는 것이 연합감리교회 목사에게 주어진 책임이고 사명입니다.

중세 신비주의자 루미의 말입니다. “당신이 아니 계시니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당신이 계시니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에 주님 계시면 세상 다른 것 아무것도 아니요 주님 안 계시면 또한 그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붙잡지 말아야 할 것 붙잡으려고 애쓰다가 진정 붙잡아야 할 것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 내려놓게 되니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게 되었다고 간증하는 젊은 목사 부부를 만나고 도전과 감동을 받았습니다.